1.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박정희 대통령 시기에 주로 추진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국가가 경제 발전을 목표로 특정 기간 주요 산업과 경제 분야의 발전 방향을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과 자원 배분 계획을 마련하는 국가 주도의 경제 계획이다. 1962년부터 1996년까지 총 7차에 걸쳐 실행되었다. 이 제도는 일반적으로 개발도상국이 산업화와 경제 성장을 가속화하고, 사회 기반 시설을 확충하기 위해 채택하는 방식으로 시작되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특징은 5가지 정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장기적인 경제 목표 설정하였다는 것이다. 계획 기간인 대개 5년 동안은 국가의 경제적·사회적 발전을 위한 구체적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는 경제 성장률, 산업화 수준, 수출입 균형, 고용 창출 등으로 구체화 되었다. 두 번째는 국가 주도의 경제 정책이었다. 정부가 경제 활동의 주요 방향을 설정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하였다. 계획의 실행을 위해 정부가 예산을 책정하고, 주요 프로젝트를 주도하거나 지원하였다. 국가가 모든 것을 주도한 계획이었기 때문에 세 번째 특징인 우선순위의 설정도 국가에 의해 이루어졌다. 제한된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특정 산업, 지역, 인프라 개발 등 우선순위를 설정하였다. 초기에는 중공업, 제조업, 교통 및 에너지 같은 기반 산업에 중점을 두는 경우가 많았다.
네 번째 산업화와 근대화 촉진 하였다. 농업 중심의 경제 구조를 산업화한 구조로 전환하고, 기술 도입 및 현대화에 집중하였다. 다섯 번째 사회 경제적 목표 포함하였다. 경제 성장 외에도 사회적 평등, 생활 수준 향상, 교육 및 보건의 확대 같은 목표가 포함되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주요 요소로는 산업 정책, 사회 기반 시설 구축, 농업과 농촌 개발, 교육 및 인적 자원 개발, 무역과 외환 정책 등이 있다. 철강, 석유화학, 전자와 같은 주요 산업들을 육성하기 위해 여러 가지 지원과 보호 정책을 펼쳤다. 중소기업 및 창업 지원을 통해 경제가 다변화될 수 있도록 기초를 다졌다. 도로, 항만, 철도, 통신망 등 국가 인프라 확충을 통하여 사회 기반 시설을 구축하였다. 도시화 및 주택 공급 프로젝트를 통한 정주 환경 개선함으로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였다. 산업화뿐만 아니라 농업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기술 지원 및 기계화 촉진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농촌 지역 개발을 위한 정책 수립과 예산을 투입하기도 했다. 교육 및 인적 자원 개발을 위하여 기술 인력을 양성하기 목표로 직업 훈련 프로그램 운영하였다. 대중 교육 확대와 문맹률 감소를 위한 교육에도 투자하였다. 무역과 외환 정책에서도 수출 주도형 경제 성장 전략 채택하여 실행하였고 외국 자본 유치를 위한 투자 환경 개선 및 정책 도입하였다.
2.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역사
-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2년~1966년) 우리나라의 많은 노동력을 이용하여 경공업을 중심으로 발전시켰다. 전력과 석탄의 에너지원과 기간 산업을 확충하고 사회간접자본을 충실하게 확충하여 경제개발의 초석을 다졌다. 농업 부분에서도 농업소득을 높이고 기술을 진흥하는 일을 하였다. 월남전 파병, 파독 광부와 파독 간호사로 외화를 벌어들였고, 1965년 한일기본조약으로 약 6억원의 자금을 받아와 경제개발의 기초를 만들었다.
- 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7년~1971년) 식량의 자급화, 화학·철강·기계공업의 건설에 의한 산업의 고도화, 산림녹화, 고용 확대, 10억달러 수출, 과학기술 진흥, 국민소득 증대, 기술과 생산성 향상에 목표를 가지고 실행되었다. 1969년에는 경인고속도로가 1970년에는 경부고속도로가 준공되어 산업화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1970년에는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었다.
- 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72년~1976년) 중화학공업을 추진하여 경제개발의 안정적 균형을 목표로 하였다. 1973년 포항 종합제철소가 준공되었고 1974년 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가 준공되었다. 1975년을 기점으로 남한이 북한의 경제 수준을 뛰어넘었다.
- 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77년~1981년) 자력 성장을 목표한 4차 경제개발계획은 기술을 혁신하고 능률을 향상하는 것을 강조하였다. 수출 100억달러를 달성하고 GNP가 1000달러를 달성하였다.
- 제5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82년~1986년) 지금까지의 성장에 초점을 맞춘 계획이 아니라 물가 안정, 시장 경제의 활성화, 소외된 지방의 개발을 주요 정책으로 삼았다. 한국 경제의 고착적인 문제였던 물가를 안정시키고 1956년부터 3 저 호황이라는 국제 환경변화를 맞이하여 경상수지의 흑자전환, 투자재원의 자립화로 경제의 질적 성장을 이루었다.
- 제6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87년~1991년) 능률과 형평을 토대로 경제 선진화와 국민복지의 증진을 목표로 하였다. 지속적인 경제 성장으로 시장경제 질서의 확립, 소득분배 개선과 사회개발, 고도의 기술 부분을 중심으로 한 산업구조 개편이 주요 과제였다. 경제개발이 계속해서 성공 가도에 이르면서 1986년 아시안 게임, 1988년 하계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였다.
- 제7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92년~1996년) 김영삼 정부 시절에 추진되었다. 자율과 경쟁을 바탕으로 21세기 경제사회의 선진화와 민족 통일을 지향한다는 기본목표 아래에서 추진되었다. 1995년 수출 1000억달러를 달성하였고 GNI 10000달러를 달성하였다. 급격한 고도성장이라는 이면의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고,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와 같은 사건들이 있었다.
3.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대한 평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경제 성장 가속했다. 자원의 체계적 배분과 집중 투자를 통해 단기간에 경제 성장을 끌어내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기존 농업 중심 경제에서 제조업 중심의 경제로 전환할 수 있는 계기 마련하여 산업화를 촉진하였다. 사회적인 부분에서도 교육, 보건, 사회 복지 등에서의 투자 증가로 국민 생활 수준 향상 시켰다. 하지만 지나친 중앙집중적 운영으로 정부 주도의 계획이 비효율적일 수 있었으며, 관료주의와 부정부패를 초래할 위험성이 증가하였다.
지나친 규제와 계획 경제 방식은 민간 부문의 성장을 저해하였고 시장 경제의 순기능을 저하했다. 산업화와 대규모 개발로 인해 환경 오염과 자연 생태계 파괴를 초래하였다. 자원의 편중 투자로 인해 지역 간, 계층 간 경제적 격차가 심화하여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하였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여전히 여러 국가에서 국가 발전 전략의 틀로 활용되고 있다. 여전히 아프리카나 여러 개발도상국에서 이를 배우기 위해 찾아온다. 특히, 개발도상국에서는 장기적인 경제 성장과 사회적 변화를 달성하기 위한 유용한 도구로 평가된다. 그러나 현대의 경제적 여건은 과거보다 더 복잡하고 변화무쌍하므로, 유연성과 민간 부문과의 협력이 중요하게 강조된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한계점을 인지하고 각 나라의 사정에 맞게 적용할 필요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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