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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사개관, 서양교육사 아테네 스파르타 로마 중세시대

by food-storyteller 2025. 1. 15.

 

교육사는 단순히 지나간 날의 기록이 아니다. 우리가 미래를 위하여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중요한 자료가 된다. 오늘의 삶을 가르치고 배우는 교육적 상황에서 선택의 기준이 될 수 있다. 교육사는 교육의 역사를 연구하고 서술하는 학문이다. 인간의 사상이 시대적으로 변화하면서 해당 시대의 사상을 교육에 어떻게 구현하였는지 연구하고 그것이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연구한다. 교육사 연구는 단순한 교역적 사실들을 모아놓고 기록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더 나은 교육을 위해 우리 자신을 이해하고 교육적 행위의 시대적 표현을 보여준다.

1.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교육

서양 문화의 근원을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로부터 출발한다. 고대 그리스는 도시국가로 이루어져 있었다. 각 도시국가는 정치, 문화, 경제적인 면에서 독립성을 가지고 있었다. 전체적인 그리스 교육의 공통점은 자유교육이었다. 하지만 계급과 성별에 따르는 편파 교육이 있었고 종족적 국민적 차별 교육을 했다. 대표적인 도시국가인 스파르타와 아테네의 교육을 살펴보자.

스파르타는 전체주의적 군사주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영화 300을 통해 엿볼 수 있는 스파르타 교육의 목적은 극기 통제된 생활을 통해 호전적인 시민과 이상적인 군인을 양성하는 것이었다. 군국주의 과제를 시행하기 위하여 강한 힘, 용기, 인내력, 복종력을 기르면서 조국에 대한 애국정신을 함양했다. 교육 내용은 체육과 군사 훈련이 주가 되었다. 도덕적·사회적 습관 형성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읽기, 쓰기는 최소한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정도였다. 음악은 전쟁터에서 죽은 영웅들을 찬양하기 위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교육 방법은 혹독한 훈련과 실제 훈련을 통해 가르쳤다. 이러한 교육을 목적으로 국가가 국민을 엄격하게 통제했다. 교육 내용은 신체적, 도덕적 훈련이 대부분이었기 떄문에 지적, 미적 교육은 등한시되었다. 군사적인 목적을 위해 신체적인 교육에 집중했기 때문에 국민을 야성과 시키고 지적인 교육을 등한시하였기 때문에 문화적으로 후세에 기여한 바가 없었다.

스파르타에서 남자아이들은 태어나 공회당에서 10명의 장로에게 검사받았다. 건강하지 못한 아이는 불합격을 받고 버려졌다. 튼튼한 아이들은 7세까지 가정에서 길러졌고 8세가 되면 집을 떠나 엄격한 육체 훈련과 애국적 교육을 받았다. 18세까지 국가의 공동 교육장에 수용되어 훈련받았고 18~20세는 전문적인 군사 훈련을 받았다. 20~30세까지는 군인집단에서 복역하였다. 30세가 되면 시민권을 부여받고 가정을 꾸릴 수 있었다. 여자아이들도 남자아이들과 같은 육체적인 훈련을 받았고 공동으로 체육 교육을 받았다. 건강한 아이를 출산하기 위한 건강한 여성으로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아테네는 스파르타와 달리 가정 중심의 교육이었다. 인간성의 다방면에 능력을 갖춘 조화 있는 발전을 이상으로 삼았다. 교육의 목적은 조화로운 자유 시민 양성이었다. 개성을 전면적으로 발전시켜 개인의 교양을 쌓아 시민으로서 자기 책임을 완수할 수 있는 인간을 만드는 데 있었다.

7세까지는 가정에서 교육받았고 8~16세까지는 학교에 다녔다. 16~18세는 국립경기장에서 운동경기와 군사훈련 및 도덕적 훈련을 받았다. 20세까지 군대에서 복역한 후 시민권을 획득하여 자유로운 시민 생활을 했다. 아테네의 여자아이들은 남자아이들보다 지위가 낮아 가정에서 가사, 육아, 재봉 등을 배웠다.

 

2. 로마시대 교육

건국 초기 로마는 왕정 체제였다. 그렇지만 이후에 공화정, 제정으로 체제의 변화를 겪었다. 그리스인들이 이상주의적인 데 반해 로마인은 실제적이어서 로마의 교육은 실제적인 교육이었다. 로마의 교육사는 그리스 정복을 기점으로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진다. 이전은 공화정 시대의 교육이라고 하고 이후를 제정 시대의 교육이라고 구분한다.

공화정 시대의 교육이념은 로마를 둘러싼 이민족의 약탈에 대비한 군대교육을 의미한다. 스파르타와 같이 군사적인 교육에 힘을 쏟았다. 실용성에 중점을 두고 나라에 유익한 시민을 양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능률적이고 활동적인 인간 육성이었다. 교육의 목적은 용감한 병사, 의무 관념이 강하고 실천적인 사람의 양성이었다. 언제든지 유용한 인간 양성이었다. 이 시대의 중요한 교육 내용은 경제생활이었다. 다음은 군사훈련, 정치 생활, 종교 생활 순이었다. 교육기관은 가정교육을 기초로 하여 학교 교육이 이루어졌다. 초등학교 격인 루두스, 중학교 격인 문법학교, 고등학교 격인 수사학교가 있었다. 교육 내용은 읽고, 셈하고, 쓰고, 12동판법, 체육이었다.

제정 시대 교육의 목적은 지적인 인간의 양성과 도덕적이고 연설에 능숙한 웅변가를 가르치는 것이다. 제정 시대에는 중등교육과 고등교육이 더욱 발달하였다. 학교 교육이 단계별로 이루어졌다. 개인이 서재를 마련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3. 중세시대 교육

중세 문화는 기독교의 영향이 엄청났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에 기독교가 국교가 되면서 그 세력이 확대되었다. 현재까지도 기독교는 서양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기독교 교육은 내세를 위한 준비였다. 학교가 교회의 지배 아래에 있는 것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초등 교육을 담당하는 교구 교회가 있었다. 교구 학교나 음악학교를 설립하여 빈곤한 아이들까지도 초등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교육 내용은 읽기, 쓰기, 셈하기, 음악 정도였다.

예비자학교라 하여 교회마다 이교도를 위한 학교를 세웠다. 초신자들에게 하나님, 부활, 심판 등에 대한 기독교의 기본 교리를 가르쳤다.

문답 학교는 예비자 학교와 교구 학교의 교사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기관으로 신학, 철학, 수사학, 문학, 천문학 등을 가르쳤다.

본산 학교는 교회의 성직자를 양성하는 기관이었다. 고등교육기관으로 문답 학교보다 전문적인 지식을 가르쳤다. 중세에 등장하는 스콜라 철학이 본산 학교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스콜라 철학은 인간의 이성적 지혜를 가지고 신앙을 인식하는 것이다.

중세 시대에는 봉건제도의 성립과 함께 무사 계급이 상류사회에 생겼다. 기사 교육의 목적은 기사로 하여금 기독교적인 정신을 배우고 교회와 영주, 여성과 약자를 보호하게 하는 것이었다. 양성기관이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중세 사회에 길드 사회가 형성됨에 따라 시민정신이 생기고 시민문화가 발전한다. 학생들은 좀 더 높은 수준의 교육을 요구하게 되었다. 이런 욕구를 따라 대학이 설립되었다. 본산 학교를 기반으로 하여 일반연구소가 설립되었고 이것이 모체가 되어 대학들이 생겼다. 중세 대학은 라틴어를 사용했다. 수업은 4~7년 정도 받을 수 있었다. 수업 방법은 강의와 토론을 사용하였다. 대학교수와 학생은 각종 세금을 면제받는 특권을 가지고 있었고 대학이 소속된 도시로부터 경제적인 우대를 받았다. 대학 내부의 자치를 인정받았고, 학위 수여권이 있었으며 신분상의 보호와 자유가 보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