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대 시대
- 고조선 많은 사람이 한국의 기원을 고조선으로 생각한다. 고조선의 교육은 홍익인간이라는 기초적인 이념 아래에서 인간애, 박애, 평등사상, 자주 독립성 등을 포함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교육법 제1조에 홍익인간을 교육이념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고조선의 교육기관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성인식, 팔조법 각종 의식 등을 토대로 볼 때 교육이 행해졌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 삼국시대 고대 한국 사회에서는 교육이 주로 지배 계층의 자제들을 대상으로 한다. 정치적, 도덕적 지도자 양성을 목적으로 한다. 고구려의 태학(太學)과 경당(扃堂)은 대표적인 교육 기관이었다. 태학에서는 유교 경전과 역사를 교육했다. 오경과 삼사를 주로 가르쳤다. 경당은 중앙과 지방 곳곳에 설치된 사학이었다. 경당에서는 무술과 실용적인 지식을 가르쳤습니다. 독서와 활쏘기이다. 문무 일체의 교육기관으로 볼 수 있다. 초등교육에서 고등교육까지의 교육을 실행했다. 백제에서는 오경박사와 같은 전문 교육 담당자가 배출되었다. 하지만 교육사적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증빙할 수는 없다. 다만 일본에 찬란한 백제문화를 전수할 만큼 발전된 문화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교육이 발달했을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신라는 화랑도를 통해 유학 교육을 체계화했다. 도덕적 교육과 군사훈련을 병행하여 지도자로서 자질을 함양해 유용한 인재로 양성함을 최대의 목적으로 했다.
- 통일신라 시대 통일신라 시대에는 국학을 설립하여 유학 교육을 체계화했다. 귀족의 자제를 관료로 양성하기 위한 관학이었다. 9년의 재학 기간을 가지고 유학(논어, 효경 등)과 잡학(의학, 천문학, 산학 등의 기술교육)등을 교육 내용으로 삼았다. 이후 독서삼품과라는 관료 선발 제도를 도입해 학문적 성과를 평가했다.
2. 고려시대
고려시대에는 유교 교육과 불교 교육이 함께 발전했다. 고려의 문화적 정신적 기반이 불교와 유교이기 때문이다. 불교는 호국불교의 성격으로 발전했고 유교는 유학적 통치 기구로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이었다. 관학으로는 국자감(國子監)이 중앙 교육기관, 지방에는 향교가 설립되었다. 유학 중심의 교육이 진행되었다. 국자감은 국자학, 태학, 사문학으로 나뉘어 계층별로 교육을 차별화했다. 그 외에도 동서학당과 오부 학당 개경에 있었던 향교와 동일한 성격의 교육기관이다. 학문만을 가르치는 순수 교육기관이었다. 고려시대의 사학으로는 십이도와 서당 있었다. 십이도는 사학 고등 교육기관으로 가장 유명한 12개의 학교를 말한다. 현재의 사립대학과 같은 성격이다. 지방 서민 교육기관으로 서당이 있었다. 불교 교육은 사찰을 중심으로 승려들이 경전과 철학을 공부했다.
고려시대에는 인재를 등용하는 과거제도가 실행되었었다. 과거시험의 시험과목과 학교의 교육 내용이 같아서 과거제도는 학교 교육을 직접적으로 통제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과거제도를 통해 인재를 선발하는 것은 봉건제도를 강화하고 신진 지배층을 등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3. 조선시대
조선시대에는 불교를 억제하고 유교를 숭배하는 정책을 펼쳤다. 그 때문에 조선 시대에는 유교를 국가 이념으로 하는 교육체제를 확립하였다. 교육제도는 고려의 체제를 거의 그대로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관학으로는 최고의 교육기관으로 성균관(成均館)이 있었다. 성균관은 최고의 교육기관으로 관리양성과 유교 경전 교육을 했었다. 중등 교육 기관으로는 사학, 종실 자제의 교육을 위한 특수기관으로 종학이 있었다. 지방에는 향교(鄕校)가 설립되어 지역민들에게 유교 윤리를 가르쳤다.
조선시대의 사학 그러니까 사설 교육기관으로는 서원과 서당이 있었다. 서원은 사립 교육기관으로서 지방 유림의 학문적 중심지 역할을 했으며, 성리학을 중심으로 학문과 덕성을 배양했다. 서당(書堂)은 일반 민중에게 한문 교육과 기초적인 학문을 가르쳤습니다. 조선시대에도 과거제도 있었다. 과거제도는 문과, 무과, 잡과로 3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조선 중기 전쟁과 당쟁의 분열로 민중들의 삶이 어려워지자 성리학의 폐단을 비판하면서 실용적인 학문인 실학사상이 발전한다. 실학은 경험적·귀납적·실증적 연구 방법을 기반으로 일상생활에 기여할 수 있는 학문이다. 대표적인 교육사상가로 유형원, 이익, 정약용, 김정희, 박지원 등이 있다.
4. 근현대 시대
- 19세기 말 19세기 말 개항과 함께 서구 문물이 유입되면서 근대적인 교육제도가 도입되었다. 정부는 갑오개혁 이후 교육입국 조서를 발표하고 구 교육을 지양하고 근대적 학교 제도를 도입했다. 통변학교, 육영공원 등이 설립되었다. 교육의 근대화는 외국 선교사들의 학교설립을 통해서도 이루어졌다. 경신학교, 배재학당, 이화학당 등이 있다. 또한 민족의 앞날을 위해 자체의 실력배양을 위한 민간인 사립학교들도 설립된다. 흥화학교, 대성학교, 오산학교 등이 있다.
-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가 되면서 식민지 교육이 시작되었다. 일본은 한국인을 식민 통치에 순응시키기 위해 차별적 교육정책을 펼쳤다. 제1기~제4기에 걸쳐 식민지 교육을 실시한다. 제1기에는 한국인의 우민화 정책과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한 식민지 교육정책을 발표하였다. 제2기에는 식민지 교육의 본격화기로 식민 교육의 문화 표방기 이다. 문화적인 회유책을 펼친다. 하지만 문화교육을 표방한 식민지 교육의 실리를 목적으로 하였다. 제3기는 황국신민화 교육정책기로 식민지 교육의 강행기 이다. 한국의 인적·물적 자원을 활용해 침략전쟁에 이용하려는 목적으로 교육 기회를 확대하여 황국신민화를 실현하였다. 제4기는 식민지 교육의 극치기로 민족 말살과 황국신민화 교육정책을 실시하였다. 교육을 전시체제로 바꾸어 군사교육·근로 교육·학병징집을 강행했다. 일제 강점기의 식민 교육 아래서도 민족 교육 운동이 있었다. 민립대학 설립 운동을 통해 한국인이 한국인의 손으로 대학을 설비하려는 운동이 일어났고, 야학 운동을 통해 비정규 교육기관이지만 민중들의 교육에 힘썼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교육 사상가로는 안창호, 이승훈, 이용익, 신규식, 민영환 등이 있었다.
- 광복 이후 광복 이후 한국은 교육을 국가 발전의 핵심 요소로 보고 체계적으로 발전시켰다. 1945~1960년대에는 교육 기회 확대와 의무 교육이 강조되었으며, 대학 설립과 같은 고등교육의 확장이 이루어졌다. 1970~1980년대에는 경제 성장과 더불어 실용적이고 기술 중심의 교육 정책이 추진되었다. 1990년대 이후에는 글로벌화와 정보화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창의성과 인성을 강조한 교육 개혁이 이루어졌다. 정보기술(IT)을 교육에 접목하게 시키고, 평생 교육과 직업 교육이 강화되었다.
한국 교육사는 한국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변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발전해 왔다. 각 시대의 교육은 당시의 사회적 요구와 이념을 반영하며 변화했으며, 오늘날의 한국 교육은 이 역사적 토대 위에서 지속해서 발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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